설국열차 영화와 만화 감상평

설국 열차 감상 평 빙하기가 온 세계, 혹한을 달리는 기차에는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가 타고 있다.이미 기존의 문명은 멸망했지만 계급은 멸망하지 않았다.비샤, 이등 차, 황금 차로 나뉘어 기차.이전의 세계의 고위직과 그 가족은 황금의 차량에 탑승하고 평범한 시민은 앞다투어 꼬리 차량과 이등 차량에 탑승했다.당연하지만 꼬리의 마스터 플랜에 가까울수록 환경은 열악하고 황금의 매스에 가까울수록 호화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시체를 포식해야 할 정도로 열악한 생활을 견디지 못한 오 구루마인의 대탈출은 학살과 탄압으로 진압되면서 지도자들은 오 구루마인들이 거기에서 탈출할 수 없도록 출구를 막아 버렸다.꼬리의 매스는 혐오의 대상인 것이다.그러나 놀라운 점이 하나 있다.빙하기가 있기 전은 오 구루마의 승객과 다름 없는 서민이던 이등 차의 승객의 일부도 다시 오 구루마를 혐오한다는 것이다.만약 그들이 조금이라도 늦게 열차에 타고 있었더라면 그들도 오 구루마의 승객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그들이 오 구루마보다 좋은 이등 차에 탄 이유는 단지”운이 좋아서”열차에 빨리 탔기 때문이다..왜 그들은 꼬리 칸을 혐오할까?인간은 누구도 특별하게 되고 싶은 본능을 갖고 있다.어떤 사람들은 이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래도 내가 그 자식보다는 낫다”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낮게 보고 우월감을 느낀다.그들은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다.한국의 경우도 그렇지 않다.많은 사람들이 서울과 지방, 전세와 월세, 정규직과 비정규직, 명문 대학과 지식 잡역 대학 외국인과 내국인 키와 외모, 인종 등 자신을 다른 사람과 “차별화” 시킨다” 그래도 내가 그 자식보다는 낮은 ” 왔다는 우월감을 느낀다.아마 이것은 형태와 방식이 다를 뿐 다른 나라도 닮았다고 생각한다.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도와도 모자랄 상황에서 서로를 차별하는 혐오하는 현상, 어쩌면 작가는 이를 비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영화와 만화는 만화의 내용과 성정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엔딩”라고 생각한다.우리가 사는 사회, 혹은 체제를 상징하는 기차.영화와 만화는 공통적으로 이 기차 안에서 일어나양극화와 차별, 빈부 격차와 부조리 등을 비판하고 있다.만화의 경우 만화 끝까지 기차가 멈추지 않고, 사람들은 기차에서 생활할 것이다.그러나 영화에서는 이 기차를 폭파시키고 두 생존자가 기차 밖으로 나아간다.나는 이 차이에 집중하겠다.기차가 우리의 사회 혹은 체제라면 자본주의 또는 민주 주의 것이다.실제 세계 여러 나라가 이 체제를 채용하였으며, 우리도 이 체제에 따르고 있다.물론 빈부 격차 등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는데 아직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대체할 만한 정치와 경제 이념은 나오지 않았다.봉건제는 몰락하고 사회 공산주의는 실패했다.만화에서 사람들이 전차를 버리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기차 안에도 여러 문제가 있지만 기차 밖에는 더 큰 문제가 있다.그래서 우리는 기차보다 더 좋은 보금자리(체제)을 찾을 때까지 어쩔 수 없이 기차에 사야 할 운명이라, 종착지가 나올 때까지 기차의 문제점을 조금씩 풀어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작중의 수세대 후에는 밖에서 살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언젠가 전차 밖으로 나가서 살수도 있지만, 그것이 가까운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그러나 폰·주노의 영화의 메시지는 조금 다르다.폰·주노의 설국 열차는 폭발적이기 때문이다.폰·주노의 세계도 빙하기가 방문 밖에는 혹한의 상황이 벌어졌으나 조금씩 기후가 올랐고 기차 밖에서도 인간이 생존할 정도가 됐다.폰·주노는 우리가 조만간 우리가 현 체제의 단점에서 탈피하는 새로운 사상이 발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물론 영화에서도 그 부분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아 향후 역사에서도 이것을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의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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