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7.09.08 01:00 나원정 기자 중앙일보 입력 2017.09.08 01:00 나원정 기자
살인자 기억법으로 마니아층과 대중을 사로잡는 스릴러를 시도했다는 원신연 감독. [매거진M]공포 스릴러 <가발>(2005)부터 코믹 스릴러 <구타 유발자들>(2006), 범죄 스릴러 <세븐 데이즈>(2007), 그리고 액션 스릴러 <용의자>(2013)까지. 스릴러의 귀재 원신연(48) 감독에게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은 보석 같은 원작이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이 소재라면 장르영화 마니아층도 확보하고 대중적 흥행도 가능하지 않을까.스타 작가 김영하(49)의 대표작이라는 부담감은 없었을까? 그것보다 가능성에 대한 전의에 불타고 있다. 책 표지도 빨갛잖아요(웃음) 8월 28일 살인자의 기억법(9월 6일 개봉) 언론시사회 직후 극장 대기실에서 만난 원 감독. 그는 의미심장하게 미소지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살인자 기억법으로 마니아층과 대중을 사로잡는 스릴러를 시도했다는 원신연 감독. [매거진M]공포 스릴러 <가발>(2005)부터 코믹 스릴러 <구타 유발자들>(2006), 범죄 스릴러 <세븐 데이즈>(2007), 그리고 액션 스릴러 <용의자>(2013)까지. 스릴러의 귀재 원신연(48) 감독에게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은 보석 같은 원작이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이 소재라면 장르영화 마니아층도 확보하고 대중적 흥행도 가능하지 않을까.스타 작가 김영하(49)의 대표작이라는 부담감은 없었을까? 그것보다 가능성에 대한 전의에 불타고 있다. 책 표지도 빨갛잖아요(웃음) 8월 28일 살인자의 기억법(9월 6일 개봉) 언론시사회 직후 극장 대기실에서 만난 원 감독. 그는 의미심장하게 미소지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살인자 기억법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연쇄살인범(설경구사진)이라는 희귀한 소재를 다룬다. -투자·배급사 쇼박스가 먼저 연출을 제안했다고. 당시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내게는 살인자 기억법이 베스트였다. 김영하 대표작으로 알려졌지만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은행나무)이 대중적인 베스트셀러라면 ‘살인자의 기억법’은 매니아적인 소설이다. 처음부터 상업적 기획의 영화가 있을 수 있지만 영화의 완성도도 상업적 성공의 기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작품에서 도전해 보고 싶었다.”-소설에서 가장 와닿은 부분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라는 소재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치매는 거의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극한의 공포가 아닌가(알츠하이머는 노인성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 주제적으로는 시간에 주목했다.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무서운 것은 악(악)이 아니다. 시간이야. 누구도 그걸 이길 수 없단 말이야.”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지나간 삶을 잊는다. 독백체 소설이다. 영화화가 어려웠겠다. 쉽지 않았다. 소설의 문장이나 문체를 바꿔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원형을 많이 지켰다. 한편 소설을 보지 않은 관객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살인자 기억법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연쇄살인범(설경구사진)이라는 희귀한 소재를 다룬다. -투자·배급사 쇼박스가 먼저 연출을 제안했다고. 당시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내게는 살인자 기억법이 베스트였다. 김영하 대표작으로 알려졌지만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은행나무)이 대중적인 베스트셀러라면 ‘살인자의 기억법’은 매니아적인 소설이다. 처음부터 상업적 기획의 영화가 있을 수 있지만 영화의 완성도도 상업적 성공의 기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작품에서 도전해 보고 싶었다.”-소설에서 가장 와닿은 부분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라는 소재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치매는 거의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극한의 공포가 아닌가(알츠하이머는 노인성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 주제적으로는 시간에 주목했다.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무서운 것은 악(악)이 아니다. 시간이야. 누구도 그걸 이길 수 없단 말이야.”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지나간 삶을 잊는다. 독백체 소설이다. 영화화가 어려웠겠다. 쉽지 않았다. 소설의 문장이나 문체를 바꿔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원형을 많이 지켰다. 한편 소설을 보지 않은 관객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영화 속 캐릭터 설정은 원작 소설을 상당 부분 각색했다. -주인공 병수의 나이를 70대에서 50대로 앞당겼다. –설경구는 심정적으로 70대인 줄 알고 연기하기도 했다는데. 영화에서 설정한 나이는 정확히 59세다. 환갑을 1년 앞두었다. 환갑이 상징적인 해잖아. 요즘은 젊다고 하지만 중년의 끝이다. 클래식으로 보면 세월의 때가 많이 낀 느낌을 생각했다.”-별난 해가 스토리에 영향을 미쳤을까. 정확히 있다. 영화에서 병 수는 알츠하이머뿐 아니라 혈관성 치매에 함께 걸린다. 퇴행성 치매가 나이가 들어 자연스럽게 전두엽이 작아져 발생하면 혈관성 치매는 사고나 정신적·외적 충격으로 혈관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 영화에서 병수의 치매 증상이 시작되는 시점이 17년 전 자동차 전복 사고 때문이라는 것이 명시된다. 그때 혈관성 치매가 시작되고 그는 어떤 중요한 진실을 잊게 된다. 치매라는 것은 가까운 기억은 사라지고 먼 기억은 더 선명해진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퇴행성 치매로 급격히 정신이 흐려지고 오히려 왜 사고가 나 자신이 살인을 멈췄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지금을 잃는 동시에 17년 전의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50대가 더 자연스러웠다. 퇴행성 치매보다 장르적으로 흥미로운 것 같았다 영화 속 캐릭터 설정은 원작 소설을 상당 부분 각색했다. -주인공 병수의 나이를 70대에서 50대로 앞당겼다. –설경구는 심정적으로 70대인 줄 알고 연기하기도 했다는데. 영화에서 설정한 나이는 정확히 59세다. 환갑을 1년 앞두었다. 환갑이 상징적인 해잖아. 요즘은 젊다고 하지만 중년의 끝이다. 클래식으로 보면 세월의 때가 많이 낀 느낌을 생각했다.”-별난 해가 스토리에 영향을 미쳤을까. 정확히 있다. 영화에서 병 수는 알츠하이머뿐 아니라 혈관성 치매에 함께 걸린다. 퇴행성 치매가 나이가 들어 자연스럽게 전두엽이 작아져 발생하면 혈관성 치매는 사고나 정신적·외적 충격으로 혈관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 영화에서 병수의 치매 증상이 시작되는 시점이 17년 전 자동차 전복 사고 때문이라는 것이 명시된다. 그때 혈관성 치매가 시작되고 그는 어떤 중요한 진실을 잊게 된다. 치매라는 것은 가까운 기억은 사라지고 먼 기억은 더 선명해진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퇴행성 치매로 급격히 정신이 흐려지고 오히려 왜 사고가 나 자신이 살인을 멈췄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지금을 잃는 동시에 17년 전의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50대가 더 자연스러웠다. 퇴행성 치매보다 장르적으로 흥미로운 것 같았다
기억을 잃어가는 연쇄살인마 병수와 또 다른 살인마 태주는 자동차 사고로 우연히 만난다. -첫 장면에서 병수는 흰색 운동화를 거꾸로 신고 있다. 소설에도 나온다. 치매 환자들이 많이 그런대. 잘 신어도 또 좌우 거꾸로 신어. 병수가 10대 때 처음 살인을 하게 된 이유는 예뻤던 아이의 정서에 아버지가 큰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다. 다음날 소풍을 가는 병수를 위해 어머니가 흰색 운동화를 사오셨는데,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해 운동화도 엉망이 된다. 병세가 악화될수록 그는 흰색 운동화에 계속 집착한다.”-소설과 달리 병수의 살인에 명분을 줬는데. 소설의 병수는 쾌감을 쫓는 병적 살인마다. 알츠하이머에 걸려도 살인을 한 번이라도 더 즐기고 싶어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라도 빠져들 수 있다는 게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 영화는 적어도 내가 주인공을 응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병수를 끝까지 그냥 살인범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영화는 병수의 혼란 자체보다 그가 잊고 있던 진실을 깨닫는 순간을 향해 달려간다. 연쇄살인범의 죄의식에 관한 영화이자 딸을 지키려는 부성애에 관한 영화다. 그는 정신이 온전치 않지만 살인자로 의심받는 태주가 나타나 딸 은희와 자신을 위협한다. 병수는 그 사실조차 잊기 십상이다. 영화상의 병수는 죽여도 되는 쓰레기만 죽일 목적의 살인마이지만 누군가를 살해한 기억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 아닐까. 결국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가 또 다른 살인마와 맞서는 순간 순간순간 드러나는 망상의 본질을 찾아내 과거를 하나씩 속죄해가는 여정이다. 그가 ‘잊어버린 진실’을 통해 죗값을 치르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다. 그 결말을 만들어 놓고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기억을 잃어가는 연쇄살인마 병수와 또 다른 살인마 태주는 자동차 사고로 우연히 만난다. -첫 장면에서 병수는 흰색 운동화를 거꾸로 신고 있다. 소설에도 나온다. 치매 환자들이 많이 그런대. 잘 신어도 또 좌우 거꾸로 신어. 병수가 10대 때 처음 살인을 하게 된 이유는 예뻤던 아이의 정서에 아버지가 큰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다. 다음날 소풍을 가는 병수를 위해 어머니가 흰색 운동화를 사오셨는데,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해 운동화도 엉망이 된다. 병세가 악화될수록 그는 흰색 운동화에 계속 집착한다.”-소설과 달리 병수의 살인에 명분을 줬는데. 소설의 병수는 쾌감을 쫓는 병적 살인마다. 알츠하이머에 걸려도 살인을 한 번이라도 더 즐기고 싶어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라도 빠져들 수 있다는 게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 영화는 적어도 내가 주인공을 응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병수를 끝까지 그냥 살인범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영화는 병수의 혼란 자체보다 그가 잊고 있던 진실을 깨닫는 순간을 향해 달려간다. 연쇄살인범의 죄의식에 관한 영화이자 딸을 지키려는 부성애에 관한 영화다. 그는 정신이 온전치 않지만 살인자로 의심받는 태주가 나타나 딸 은희와 자신을 위협한다. 병수는 그 사실조차 잊기 십상이다. 영화상의 병수는 죽여도 되는 쓰레기만 죽일 목적의 살인마이지만 누군가를 살해한 기억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 아닐까. 결국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가 또 다른 살인마와 맞서는 순간 순간순간 드러나는 망상의 본질을 찾아내 과거를 하나씩 속죄해가는 여정이다. 그가 ‘잊어버린 진실’을 통해 죗값을 치르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다. 그 결말을 만들어 놓고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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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는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동시에 잊고 있었던 17년 전 사고의 기억을 서서히 되살리게 된다. 살인은 시라기보다 산문에 가깝다. 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살인은 생각보다 빈번하고 엉성한 작업이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아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문득 진 것 같다. 그런데 무엇에 졌을까. 그걸 모르겠어. 졌다는 느낌만 든다.-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중에서 왜 설경구였나. 요즘은 실화나 사회적 이슈에 기대거나 멀티캐스팅 등 배우가 자신의 부담을 나눌 수 있는 캐릭터를 선택하는 길이 너무 많다. 그런데 병수는 그야말로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하는 고난의 캐릭터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것이고 치매 환자의 경험담을 들을 수도 없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이 캐릭터를 창조하는 배우는 설경구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아시스(2002이창동 감독) 박하사탕(2000이창동 감독) 같은 작품들을 돌아본다. 촬영하면서 더욱 확신이 생겼다.”-설경구의 정수가 드러나는 장면이라면. 병수가 실존한다면 바로 이랬지 않을까. 매 장면 어떤 모습을 제시한 뒤 한계를 넘어 또 다른 모습의 병수를 표현했다. 처자를 때리는 횟집 주인의 목을 조를 때와 살인자의 본능만 남은 정신없이 딸의 목을 조를 때의 얼굴이 모두 다르다. 계산이 아니라 본능적인 연기였다.”-병수의 외모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환갑 전후의 이미지를 많이 찾아봤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 소도시가 전라북도 군산과 김제이다. 동년배 주민의 모습에 주목하였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도 참고했다. 정신분열증을 앓은 고흐는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보다 주어진 운명을 찾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신봉했다고 한다. 사이코패스는 유전적 요인이 크다. 슬프지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으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병수와 그 자화상이 닮은 듯했다. 곱슬머리는 팀 버튼 감독, 광적인 눈빛은 앨버트 아인슈타인을 떠올렸다 병수는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동시에 잊고 있었던 17년 전 사고의 기억을 서서히 되살리게 된다. 살인은 시라기보다 산문에 가깝다. 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살인은 생각보다 빈번하고 엉성한 작업이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아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문득 진 것 같다. 그런데 무엇에 졌을까. 그걸 모르겠어. 졌다는 느낌만 든다.-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중에서 왜 설경구였나. 요즘은 실화나 사회적 이슈에 기대거나 멀티캐스팅 등 배우가 자신의 부담을 나눌 수 있는 캐릭터를 선택하는 길이 너무 많다. 그런데 병수는 그야말로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하는 고난의 캐릭터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것이고 치매 환자의 경험담을 들을 수도 없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이 캐릭터를 창조하는 배우는 설경구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아시스(2002이창동 감독) 박하사탕(2000이창동 감독) 같은 작품들을 돌아본다. 촬영하면서 더욱 확신이 생겼다.”-설경구의 정수가 드러나는 장면이라면. 병수가 실존한다면 바로 이랬지 않을까. 매 장면 어떤 모습을 제시한 뒤 한계를 넘어 또 다른 모습의 병수를 표현했다. 처자를 때리는 횟집 주인의 목을 조를 때와 살인자의 본능만 남은 정신없이 딸의 목을 조를 때의 얼굴이 모두 다르다. 계산이 아니라 본능적인 연기였다.”-병수의 외모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환갑 전후의 이미지를 많이 찾아봤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 소도시가 전라북도 군산과 김제이다. 동년배 주민의 모습에 주목하였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도 참고했다. 정신분열증을 앓은 고흐는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보다 주어진 운명을 찾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신봉했다고 한다. 사이코패스는 유전적 요인이 크다. 슬프지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으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병수와 그 자화상이 닮은 듯했다. 곱슬머리는 팀 버튼 감독, 광적인 눈빛은 앨버트 아인슈타인을 떠올렸다
병수의 외모에는 아인슈타인, 팀 버튼 감독,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을 참고했다. -설경구는 ‘오아시스’ 때보다 더 극도의 운동으로 감량했다면, 또 다른 살인마 태주 역의 김남길은 살이 쪘다.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 포스터를 직접 사주면서 화장하지 않은 조커를 떠올리라고 했다고 한다. 김남길이 다정한 눈을 가진 줄 알았는데 만나보니 눈 속에 차가운 눈[눈]이 있었다. 예리함을 가진 배우다. 나는 태주가 눈에 잘 띄지 않는 평범한 순경처럼 보였으면 했다. 웃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안 웃는 것 같아. 자신을 조금 내려놓은 나태함이 더 섬뜩한 것 같았다.”-태주는 소설에서는 실체가 불명확한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캐릭터를 입체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를 소시오패스로 추정했다. 태주가 이 일대에서 수많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은 살인마를 전설처럼 추앙해왔다는 ‘비하인드’를 만들었다. 우연한 자동차 접촉사고로 병수를 만나는 순간 그 사람임을 알게 된 것이다.”-어떻게 알아봤을까. 의학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장르의 영화를 하다 보면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을 정말 많이 봐야 한다. 나의 경우 세븐데이즈 때부터 실제 재판 현장을 찾아다녔다. 마포에서 유명했던 만삭 아내 살인사건이나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범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면 분명 다른 느낌이 든다. 특히 눈에서 우러나온다. ‘알아본다’라는 게 직관 같은 거라고 해야 되나. 이 영화에서는 병수와 태주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태주가 병수의 왜곡된 기억이 만들어낸 인격일 수도 있다고 가정하고 촬영했다고. 그것 치고는 캐릭터가 꽤 디테일하다. 예기치 못한 신체의 비밀까지. 여기에도 비하인드가 있다. 태주는 착하게 태어났지만 경찰인 아버지의 과도한 훈육에 시달리다 10대 때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다. 고민이 많았다. 외형의 변화로 캐릭터를 설명하기보다 내면의 단단함을 표현하는 게 고급스럽지 않을까. 근데 장르의 충실이랄까. 신체적 이미지가 캐릭터를 한눈에 이해시킬 것 같았다 병수의 외모에는 아인슈타인, 팀 버튼 감독,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을 참고했다. -설경구는 ‘오아시스’ 때보다 더 극도의 운동으로 감량했다면, 또 다른 살인마 태주 역의 김남길은 살이 쪘다.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 포스터를 직접 사주면서 화장하지 않은 조커를 떠올리라고 했다고 한다. 김남길이 다정한 눈을 가진 줄 알았는데 만나보니 눈 속에 차가운 눈[눈]이 있었다. 예리함을 가진 배우다. 나는 태주가 눈에 잘 띄지 않는 평범한 순경처럼 보였으면 했다. 웃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안 웃는 것 같아. 자신을 조금 내려놓은 나태함이 더 섬뜩한 것 같았다.”-태주는 소설에서는 실체가 불명확한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캐릭터를 입체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를 소시오패스로 추정했다. 태주가 이 일대에서 수많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은 살인마를 전설처럼 추앙해왔다는 ‘비하인드’를 만들었다. 우연한 자동차 접촉사고로 병수를 만나는 순간 그 사람임을 알게 된 것이다.”-어떻게 알아봤을까. 의학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장르의 영화를 하다 보면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을 정말 많이 봐야 한다. 나의 경우 세븐데이즈 때부터 실제 재판 현장을 찾아다녔다. 마포에서 유명했던 만삭 아내 살인사건이나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범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면 분명 다른 느낌이 든다. 특히 눈에서 우러나온다. ‘알아본다’라는 게 직관 같은 거라고 해야 되나. 이 영화에서는 병수와 태주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태주가 병수의 왜곡된 기억이 만들어낸 인격일 수도 있다고 가정하고 촬영했다고. 그것 치고는 캐릭터가 꽤 디테일하다. 예기치 못한 신체의 비밀까지. 여기에도 비하인드가 있다. 태주는 착하게 태어났지만 경찰인 아버지의 과도한 훈육에 시달리다 10대 때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다. 고민이 많았다. 외형의 변화로 캐릭터를 설명하기보다 내면의 단단함을 표현하는 게 고급스럽지 않을까. 근데 장르의 충실이랄까. 신체적 이미지가 캐릭터를 한눈에 이해시킬 것 같았다
원신연 감독은 태주 역의 김남길에게 ‘웃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니 안 웃는 느낌’의 평범하고 시원한 캐릭터를 주문했다.–영화마다 비하인드를 만드는 편인가. 꽤 오래됐다. 각 캐릭터를 표현하는 정보와 환경, 연대기가 있어야 장면을 밀도 높게 끌고 갈 수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병수와 시 강좌를 듣는 영주(황석정)까지도 비하인드가 있었다. 연기에 대해서는 배우에게 모든 걸 맡기는 편인데, 이번 영화는 배우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이 있었다. 병수만으로도 여러 감정을 표현하지만 치매 때문에 그것조차 균질하지 않다. 그런 순간마다 비하인드를 바탕으로 감정과 이유를 제가 계속 확인하면서 촬영했다. “-소설에 비해 병수가 기댈 만한 주변 인물들이 많아졌다. 보다 명징해진 결론까지 원작보다 확실히 따뜻하고 친절해졌다. 소설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연상되는 것은 청불 이상일 수 있다. 영화는 보고 듣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크게 느껴진다. 너무 낯설게 편하게 장르를 즐길 수 있는 장치를 영화에 넣게 됐다. 병수를 응원하는 마음에서도 가까이서 그를 이해하고 빛이 되어주는 캐릭터가 있기를 바랐다. 관객의 이해를 돕는 결론을 만든 것이 상업적 접근일 수 있다. 이야기 자체는 분명 마무리되지만 해석의 여지는 다양하게 열려 있다. 더 풍부해졌다고 봐 달라 원신연 감독은 태주 역의 김남길에게 ‘웃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니 안 웃는 느낌’의 평범하고 시원한 캐릭터를 주문했다.–영화마다 비하인드를 만드는 편인가. 꽤 오래됐다. 각 캐릭터를 표현하는 정보와 환경, 연대기가 있어야 장면을 밀도 높게 끌고 갈 수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병수와 시 강좌를 듣는 영주(황석정)까지도 비하인드가 있었다. 연기에 대해서는 배우에게 모든 걸 맡기는 편인데, 이번 영화는 배우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이 있었다. 병수만으로도 여러 감정을 표현하지만 치매 때문에 그것조차 균질하지 않다. 그런 순간마다 비하인드를 바탕으로 감정과 이유를 제가 계속 확인하면서 촬영했다. “-소설에 비해 병수가 기댈 만한 주변 인물들이 많아졌다. 보다 명징해진 결론까지 원작보다 확실히 따뜻하고 친절해졌다. 소설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연상되는 것은 청불 이상일 수 있다. 영화는 보고 듣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크게 느껴진다. 너무 낯설게 편하게 장르를 즐길 수 있는 장치를 영화에 넣게 됐다. 병수를 응원하는 마음에서도 가까이서 그를 이해하고 빛이 되어주는 캐릭터가 있기를 바랐다. 관객의 이해를 돕는 결론을 만든 것이 상업적 접근일 수 있다. 이야기 자체는 분명 마무리되지만 해석의 여지는 다양하게 열려 있다. 더 풍부해졌다고 봐 달라
영화에서 병수의 친구인 동네 파출소장 병만(오달수)은 원작 소설에는 없던 인물이다.오프닝과 엔딩에서 반복되는 선로 터널 이미지의 의미는. 병수가 죽을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죄의 상징이다. 터널 속 어둠에서 벗어났지만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또 하나의 소실점뿐이다. 터널을 돌아보며 문득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내가 빠져나왔다고 생각한 어두운 운명이 다시 펼쳐지고 있다. ‘박하사탕’에서 (설날) 경구 형이 ‘나 갈래’를 외친 공간(충북 충주시 산척면 명서리 삼탄)에서 찍고 싶었는데 그곳은 지금도 기차가 너무 자주 다녀 촬영 허가가 나지 않았다. 단편 빵과 우유(2003) 때 찾았던 공간(강원 정선군 구절리)에서 찍게 됐다. 빵과 우유도 자살을 결심한 선로 보수 노동자의 마지막 근무일을 그린다. 그렇다. 그래서 이번 터널 촬영이 나에게는 더 의미가 있었다. 단편에서 주연한 동생 원풍연은 살인자의 기억법에도 형사 역할로 등장한다-터널 모티브를 원작 소설에 언급된 영화 살인의 추억(2003봉준호 감독)에서 따왔다고 생각했다. 지금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병수를 다양한 형태로 스케치해놨고, 대중이 가장 빠져들 만한 캐릭터를 고민하던 중 그런 가정은 해봤다. 살인의 추억의 연쇄살인범이 나이 들어 치매에 걸렸다면? 그런데 그러면 정말 컬트 영화가 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만약에 치매 선고를 받는다면. 너무 무서운 가정이지만 마음에 걸리긴 한다. 만약 치매에 걸리면 그 의식 속에서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나 시나리오는 어떨까. 외부와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관객은 나 혼자겠지만 그렇게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한국 스릴러 영화의 저변을 넓히고 싶다고 했는데. “최근 인상 깊게 본 영화가 ‘겟 아웃'(5월 17일 개봉, 조던 필레 감독)과 ‘맨 인 더 다크'(2016, 페데 알바레즈 감독)다. 단순한 듯한 이야기의 함축성과 힘이 대단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결국은 재미로 귀결된다. 현실적으로 국내 투자·배급사에 떠도는 시나리오 중 스릴러가 60% 정도인데, 지금의 한국 장르 영화는 고민이 너무 많고 관객들에게 그 고민을 자꾸 넘겨주니까 피곤한 것 같다. 태도를 좀 더 부드럽게 하고 소재 개발을 더 고민해야 한다. 차가운 소설 vs 친절한 영화 영화에서 병수의 친구인 동네 파출소장 병만(오달수)은 원작 소설에는 없던 인물이다.오프닝과 엔딩에서 반복되는 선로 터널 이미지의 의미는. 병수가 죽을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죄의 상징이다. 터널 속 어둠에서 벗어났지만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또 하나의 소실점뿐이다. 터널을 돌아보며 문득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내가 빠져나왔다고 생각한 어두운 운명이 다시 펼쳐지고 있다. ‘박하사탕’에서 (설날) 경구 형이 ‘나 갈래’를 외친 공간(충북 충주시 산척면 명서리 삼탄)에서 찍고 싶었는데 그곳은 지금도 기차가 너무 자주 다녀 촬영 허가가 나지 않았다. 단편 빵과 우유(2003) 때 찾았던 공간(강원 정선군 구절리)에서 찍게 됐다. 빵과 우유도 자살을 결심한 선로 보수 노동자의 마지막 근무일을 그린다. 그렇다. 그래서 이번 터널 촬영이 나에게는 더 의미가 있었다. 단편에서 주연한 동생 원풍연은 살인자의 기억법에도 형사 역할로 등장한다-터널 모티브를 원작 소설에 언급된 영화 살인의 추억(2003봉준호 감독)에서 따왔다고 생각했다. 지금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병수를 다양한 형태로 스케치해놨고, 대중이 가장 빠져들 만한 캐릭터를 고민하던 중 그런 가정은 해봤다. 살인의 추억의 연쇄살인범이 나이 들어 치매에 걸렸다면? 그런데 그러면 정말 컬트 영화가 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만약에 치매 선고를 받는다면. 너무 무서운 가정이지만 마음에 걸리긴 한다. 만약 치매에 걸리면 그 의식 속에서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나 시나리오는 어떨까. 외부와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관객은 나 혼자겠지만 그렇게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한국 스릴러 영화의 저변을 넓히고 싶다고 했는데. “최근 인상 깊게 본 영화가 ‘겟 아웃'(5월 17일 개봉, 조던 필레 감독)과 ‘맨 인 더 다크'(2016, 페데 알바레즈 감독)다. 단순한 듯한 이야기의 함축성과 힘이 대단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결국은 재미로 귀결된다. 현실적으로 국내 투자·배급사에 떠도는 시나리오 중 스릴러가 60% 정도인데, 지금의 한국 장르 영화는 고민이 너무 많고 관객들에게 그 고민을 자꾸 넘겨주니까 피곤한 것 같다. 태도를 좀 더 부드럽게 하고 소재 개발을 더 고민해야 한다. 차가운 소설 vs 친절한 영화
M230-살인자의 기억법 은퇴 연쇄살인범 병수(설경구)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이유부터 딸 은희(김설현) 주변을 맴도는 또 다른 살인마 태주(김남길)의 정체, 은희가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까지. 김영하 소설에 비해 영화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나섰다. 알츠하이머와 씨름하는 병수의 절박함은 여전하지만, 그에게는 친구인 동네파출소장 병만(오달수) 등 애정을 갖고 곁을 지켜줄 ‘내 편’이 생겼다. 병만은 원작 소설에 없던 인물이다. 소설의 병수가 살인을 쾌감으로 즐겼다면, 영화의 병수는 ‘세상에 흩어진 죽을 맛의 쓰레기를 청소하기 위해’ 살인을 한다. 병수의 사투를 응원할 명분을 얻은 대신 원작의 냉랭한 위트는 상쇄됐다. 시시각각 정신이 흐려졌던 병수가 완전한 혼란 속에 가만히 얼어붙는 마지막. 소설의 이 엔딩을 원신연 감독은 전혀 다르게 풀어냈다. “자기반성과 고백”이라고나 할까. 애초 병수의 나이를 70대에서 50대로 바꿀 때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결말이다. ‘소설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영화가 될 것’ 원 감독이 영화화를 결심하고 가장 먼저 마음에 새긴 메모다. 나원정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라희찬(STUDIO706) M230-살인자의 기억법 은퇴 연쇄살인범 병수(설경구)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이유부터 딸 은희(김설현) 주변을 맴도는 또 다른 살인마 태주(김남길)의 정체, 은희가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까지. 김영하 소설에 비해 영화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나섰다. 알츠하이머와 씨름하는 병수의 절박함은 여전하지만, 그에게는 친구인 동네파출소장 병만(오달수) 등 애정을 갖고 곁을 지켜줄 ‘내 편’이 생겼다. 병만은 원작 소설에 없던 인물이다. 소설의 병수가 살인을 쾌감으로 즐겼다면, 영화의 병수는 ‘세상에 흩어진 죽을 맛의 쓰레기를 청소하기 위해’ 살인을 한다. 병수의 사투를 응원할 명분을 얻은 대신 원작의 냉랭한 위트는 상쇄됐다. 시시각각 정신이 흐려졌던 병수가 완전한 혼란 속에 가만히 얼어붙는 마지막. 소설의 이 엔딩을 원신연 감독은 전혀 다르게 풀어냈다. “자기반성과 고백”이라고나 할까. 애초 병수의 나이를 70대에서 50대로 바꿀 때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결말이다. ‘소설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영화가 될 것’ 원 감독이 영화화를 결심하고 가장 먼저 마음에 새긴 메모다. 나원정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라희찬(STUDIO706)